POINT of VIEW 2007.09.30 00:25

장충체육관 이야기

필리핀을 얘기할때 꼭!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

필리핀이 한때는 정말 잘 나갔던 나라였다.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필리핀 밖에 없었다.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찮게 마주치게 되는 반세기 이상 지난 건물들을 보면, 과거 필리핀이 얼마나 잘/나/갔/던 나라였는지를 인식하게 되곤한다. 비록 지금은 흉물꺼리가 되어 버린 건물이거나, 몇년째 보수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 이미 60년대 부터 존재했던 - 그런 도로들도 그날의 "영화" 를 말해 주고 있다.

장충체육관
우리나라에도 필리핀의 "왕년에~" 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들이 몇곳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장충체육관이다.

1963년 2월에 완공이 된 이 "대한민국 최초의 실내체육관" 인 장충체육관은 당시 우리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돔형식으로 설계된 곳으로써, 설계에서 시공까지 100% 필리핀의 원조와 기술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그날의 완공식에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까지 참석을 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사건" 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한국과 필리핀은 지금과는 정말 많이 다른 "상황"이었다.
먼나라 이웃나라
1953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로 세계 10위의 "최빈국" 이었던 반면, 한국전쟁 당시 UN동맹군의 일원으로 참전을 했던 필리핀은 국민소득이 195달러에 달하는 무척 잘~ 사는 나라였다.

196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해 식량원조를 요청했다는 기록은, 사실 우리에게는 '정말그랬을까' 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우리의 "목표" 중에 하나가 필리핀을 넘어서는 것 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2007년 오늘, 필리핀을 "가정부의 나라"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안타깝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반세기전의 상황과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들의 원조를 받아 "최초" 의 실내체육관을 지었던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그 도움의 "주체" 였던 필리핀은 어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 이 되어버렸다.

모든것이 변해렸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같지는 않았다는 것과, 우리가 언제까지나 지금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바로 장충체육관 처럼 말이다.


이원복의 세계사 산책 - 22. 1969년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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