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of VIEW 2006.12.03 01:44

5년전,아니 6년 쯤 전의 일이다.
내가 필리핀 행을 결심하고 나자 여기저기 가기전에 얼굴한번 보자, 식사한번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좀 소식이 뜸했던 친구들 역시 나의 필리핀행은 한편으로는 의외의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랬었다.

그 여러 종류의 송별회에서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었던 얘기는 "외국나가면 한국사람을 더 조심해야 한다" 는.. 충고와 조언들이었다. 그들은 사기꾼이며 뭔가 조심할 부분이 많은 사람들.. 어쩌면 그것 이상이었다.
그런 이유였었는지, 어릴적 내 상상속의 북한사람들이 모두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것과 비슷하게 이곳 필리핀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뭔가 내가 한국에서 만났었던 사람들과는 좀 다른 모습, 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일종의 세뇌 작용이었던 모양인지, "염려하지 말라" 고 했던 내 말과는 달리, 나 역시도 그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으로 필리핀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이제 6년이 흘렀다. 많은 것이 변했고, 그 중 내 "신분" 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래고 내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에서 여러가지 이유와 목적으로 필리핀을 찾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빌리지에서, 교회에서, 한국 식료품점에서, 쇼핑몰에서..
혹 그들중 어느 이유로 몇가지 얘기를 나눌 기회가도 생기게 되면 나는 어김없이 쌀쌀맞고 냉정한 사람이 되어버리곤 한다. 최소한 그렇게 쌀쌀맞아 지려고 노력을 한다.

처음 객지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것저것 도움을 청해야 할 경우가 다반사고, 그래서 의례 '같은 한국사람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해 오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을 외면하게 된다. 어쩌면 그런 냉정함이 이땅, 필리핀에서 탈 없이 살아가는 한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언젠가, 무슨 인터넷 카페에 필리핀의 택시요금을 문의 하는 글이 있었다.
필리핀의 물가수준은 한국과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시 택시요금에 대한 답을 하면서 "25페소" 라고 적어두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가 지난 어느날, 나는 한참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게 되는 메일 한통을 받았다. 메일의 내용은 왜 택시 기본요금이 "30페소" 인데 25페소라는 거짓정보를 게시판에 올렸냐는 내용이었다.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당신같은 사람때문에 선량한 한국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내용과 함께... ㅡㅡ;;

처음 글을 올렸던 시기와 내게 메일을 보냈던 사람이 그 글을 본 시기에 1년 이상이 시차가 나는것, 그래서 이미 택시 기본요금이 30페소로 올라버린 것은, 25페소의 기본요금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다고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거짓정보를 흘리고 다니는 "사기꾼" 이 되어버렸다.

조금 필리핀에 더 살았다고 물건을 구입하는데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은 의자를 하나 사러갔던 적이 있는데, 처음 내가 알고 있는 가격보다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세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 물건을 구입하고 그것에 대해 "만족" 을 하는 것은 그와 비슷한 제품이 재래시장 한켠에 붙어있는 가구점에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다.
문제는 그런 "사실" 을 알게 된 후 돌변하게 되는 그들의 태도다. 분명 먼저 산 의자가게 주인으로 부터 무슨 커미션을 받았을것이라는 둥.. 필리핀에 오래 살았다면서 별로 알지도 못한다는 둥.. 하는 소리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그리고 아직 필리핀을 와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들에 별로 공감이 되지 않거나 아예 이해 자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라구~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당신이 뭔가 잘못생각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에 당신이 "극히" 정상적인 생각과 가치관,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것이다.


오늘도 참 이상한 전화를 한통 받았다.
내가 받은 교육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 전화 통화중에 "내가 사기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상식밖의 얘기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였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한번의 생각을 덧붙이게 된다. 내가 사기꾼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필리핀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는,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내 눈에서 무척이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필요하다는 어떠한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 것 뿐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한번 더 하고 또 다짐을 하게 된다. 분명 그들은 '화장실'에서 나올때, 이미 화장실에 들어가기전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 되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다.

내가 사기꾼인지, 아니면 그들이 나를 사기꾼으로 만드는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6년전의 나, 그리고 당신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한국사람들은 모두 사기꾼들인가?

결론은 그렇다. 단지 그렇게 사기꾼이 되기보다는 그들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쌀쌀맞고 모진 사람이 되는 것이 이곳 필리핀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처세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들과 나 사이에 넘지 못할 담을 쌓고, 그 담 건너편 쪽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외면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그런 생각.. 그것이 내 슬픈 결론이다. "사기꾼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내 슬픈 결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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