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들을 위한 필리핀 101 2006.10.15 01:03

원래 이 시는 스페인어로 쓰여진 것을 Charles E. Derbshire씨가 영역한 것을 옮겼다. 이 영역본이 현재 가장 많이 읽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영역된 것은 28개나 넘는다.

이 시는 원래 시의 제목도 없고 작가인 호세리잘의 서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던 것을 필리핀인 신부이자 애국자였던 Mariano Decanay씨가 Ultimo Adios(Last Farewell)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Mi Ultimo Adios(My Last Farewell)라는 제목을 쓰기도 하나 여기서는 그냥 Ultimo Adios로 쓴다.

한글로 번역된 '마지막 인사' 는 현재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의 리잘 기념관 내에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인사

잘 있거라,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받는 태양의 고향이여.
동방 바다의 진주, 잃어버린 우리의 에덴 동산이여!
나의 이 슬프고 암울한 인생을, 기꺼이 너를 위해 바치리니,
더욱 빛나고, 더욱 신선하고, 더욱 꽃핀 세월이 오도록
너를 위하여도, 나의 행복을 위하여도, 이 한 목숨 바치리라.

전쟁터에서 열광적으로 싸우며, 다른 형제들도
한 점의 의혹도 두려움도 없이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치나니,
장소가 무슨 상관이랴, 사이프러스 나무여, 월계수여, 백합꽃이여,
교수대에서건, 들판에서건, 전쟁에서건, 잔인한 순교대에서건,
내 집과 내 조국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나 다 한 가지.

하늘이 어두운 망토 뒤에서, 벌겋게 달아오르며
마침내 새 날을 알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죽어가노라,
너의 여명을 물들일 꽃물이 필요하다면
거기 나의 피를 부어라, 기꺼이 나의 핏방울을 쏟으리라
밝아오는 햇살에 하나의 빛을 더할 수 있도록.

아직 사춘기 어린 시절의 나의 꿈들로부터
이윽고 활기에 찬 청년 시절의 나의 꿈까지,
내 꿈은 어느날인가, 동방 바다의 보옥, 오직 너를 보고자 했나니,
눈물을 닦는 그 까만 눈동자, 그리고 찌푸린 이맛살도, 주름살도,
부끄러움의 흔적조차 없이, 높이 쳐든 너의 반짝이는 이마를.

내 인상의 꿈이여, 내 불꽃의 살아있는 열망이여,
이윽고 떠날 채비를 하는 이 영혼이 너에게 소리쳐 건배하노라!
건배! 아, 너의 비상을 위해 추락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다는 것, 너의 하늘 아래 죽는다는 것,
그리고 너의 사랑과 매혹의 땅 속에 영원히 잠든다는 것.

나의 무덤 위에, 그 짙게 덮힌 소박한 풀잎들 사이
혹시 어느날 초라한 한 송이 꽃이 싹터오르는 것을 보거들랑,
그 꽃을 너의 잎술에 가져다다오, 거기 나의 영혼에 입맞추어다오
그러면 나는 차거운 무덤 아래서, 나의 이마에
너의 사랑의 숨결, 너의 입김의 따스함을 느끼리니.

달이 와서, 그 보드랍고 고요한 달빛으로 나를 지켜보게 하라,
새벽이 와서, 여명이ㅡ 그 불빛 광휘를 내게 비추게 하라,
바람이 와서, 그 아픈 신음 소리로 내 곁에 와 울게 하라,
그리고 무덤 위 내 십자가 위에, 새 한 마리 내려와 앉거든
거기 앉아 소리높여 너희의 찬가를 부르게 하라.

불타는 태양이 빛방울을 증발시켜, 그대로 순수하게
하늘로 되돌아가게 하라, 나의 절규를 함께 이끌고...
너의 친구 있거든, 나의 이 철이른 종말을 울게 하라
그리고 어느 고요한 하오에,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 있거든
기도하라, 너도, 오 나의 조국이여! 나로 하여, 하나님을 쉬게 하리니...

불행하게 죽어간 모든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천하에 없는 고통을 당하고 가신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라,
고생 속에 신음하는 우리 불쌍한 어머니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고아들과 과부들, 고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끝내 구원을 받아야 할 너 자신을 위해 기돠라.

그리고 묘지가 어두운 밤에 휩싸일 때
그리고 오직 주검들 만이 홀로 남아 밤을 지샐 때,
그 휴시을 방해하지 말라, 그 신비를 흐트리니 말라,
어쩌다 거기 양금소리, 거문고 소리가 교교하게 들리면,
사랑하는 조국이여, 너를 위해 부르는 나의 노래인 줄 알라.

그리고 어느날 아무도 나의 무덤을 기억하지 못 할 때
나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어느 십자가도 돌도 없을 때,
사람이 괜이로 땅을 갈고 흙을 흐트러뜨려도 좋으니,
그 때의 나의 잿더미는 아무것도 없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그들이 만드는 너의 양탄자의 먼지로 남아 있으리니...

그 때는 네가 나를 잊은들 무슨 상관이리,
너의 대기, 너의 공간, 너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너의 귀에 은밀히 속삭이는 맑고 떨리는 음악이 되리니...
나의 신앙의 본질을 끝없이 반추하는 신음소리, 노래소리,
수런거리는 소리, 색깔, 빛, 향기가 되리니...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나의 아픔 중의 아픔이여,
사랑하는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들으라.
여기 너에게 모든 것을 놓고 가노라, 나의 어머니 아버지, 나의 사랑을,
나는 가노라, 종도 살인자도 압제자들도 없는 곳으로,
신앙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그곳,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신 그곳으로

안녕히 계세요, 어머님 아버님; 잘 있거라, 형제들아,
내 영혼의 피붙이들아, 잃어버린 조긱에 사는 내 어린시절의 친구들아,
피로하고 지친 날을 내 이제 쉬게 되었음을 감사드려다오;
잘있어요 다정한 이국의 아가씨, 나의 친구, 나의 즐거움이여
잘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 죽는다는 것 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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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리잘 (Jose Rizal, 1861~1896)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세 리살은 스페인 치하에서 필리핀의 독립을 주창한 필리핀의 독립 지사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갔던 그는 마드리드에서 '메리 메 탄헤레'라는 소설을 발표,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식민지 출신의 젊은 유학생이 발표한 한 권의 소설은 당시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마드리드의 지식층 사이에서 급속도로 읽혀지게되었다.

스페인 정부의 추방령에 따라 필리핀으로 돌아온 리살은 조국 필리핀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실천에 옮기고자, 필리핀 민족동맹을 결성하여 반체제 운동의 기수가 된다.

하지만 그의 활동을 주목한 스페인 당국에 체포되어 민다나오 섬으로 유배당한다. 그리고 1896년 필리핀 혁명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현재의 리살 공원에서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처형당했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인들의 가슴 깊숙이 감동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리살은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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